여행기

백두산을 오르며

수병재 2007. 4. 4. 13:39








 

 

 



백두산에서

누가 우릴 여기 불러모으는가
하늘 관을 쓴 저 산은
오뉴월 초여름에도
저렇듯 흰머리로
맑고 깨끗한 순결로 우릴 반기며
희디 못해 시퍼런 천지 속으로
모두를 함께 안내하나니
그 희디 흰 속살 드러내며
어머니의 젖줄 맛보게 하나니
아, 우리의 정신 여기서 발원되어
압록, 두만을 이루고
송화, 흑룡을 만들어
만주벌판을 호령하는구나
감히 넘보지 못하는 저 산들은 스스로 몸을 낮추고
연초록 빛 능선들은 맑은 눈 들어
백두의 장엄을 갈망하며
천지 물빛으로 몸을 적시나니
백두여
천지여
그대 늘 변하지 않는 우리의 희망이여
하여 다시금 부르는 그대이기에
오늘 다시 우리 그댈 향하나니
그대 언제나
우리의 자랑이어라...

몇 년전 백두산을 한번 올라보고자 했던 소망을 이룩했습니다. 그 때의 그 감동들을 되새기며 즉흥적으로 써본 시입니다.


우리에겐 민족의 영산으로써 정신적인 상징인 백두산과 천지! 높다란 하늘위에 펼쳐진 하늘연못과 장엄한 연봉들은 늘 우리의 영혼을 불러모으는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피끓는 가슴 안고 거친 숨결 몰아치며 내달아 오르도록 하는 것인지, 그 장엄과 위용은 몇 년만에 다시 오르는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2002년 5월 31일 장백폭포를 보고 올랐던 백두산은 그때도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장백폭포 아래쪽에서야 겨우 야생화 한두 개체 정도를 볼수 있었죠. 하여 백두산의 야생화에 대해서 언제나 미련으로 남아 있었으며 또한 첫경험이 대부분 그러하듯 경황없이 지나쳐 제대로 음미하지 못함이 갈증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여 그러한 갈증도 풀겸 다른 일정으로 중국에 갔지만 친구에게 백두산을 오르자고 조릅니다.
이번에는 새로이 개발된 코스를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백두산을 오르는 일반적인 길들이 북파라고 소위 장백폭포 있는 쪽인데 우리는 서파쪽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동파도 선택해보고 북한쪽에서도 올라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집안현의 고구려 고분 등을 비롯한 문화유적을 보고 다시 통화로 나와서 백두산쪽으로 향합니다. 전에는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이도백하쪽으로 가서 거기서 백두산 출입문을 향해 갔던 기억이 납니다만 이번의 코스는 그보다는 시간상으로 더 짧은것 같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만주벌판을 달려 송화라는 마을을 지나 백운봉산장에 당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쪽 서파쪽은 아직 개발된지 얼마 안된 곳이라 그런지 산장이라고는 백운봉산장과 여여산장밖에 없습니다. 백운봉산장은 백두산의 한 봉우리 이름을 따서 지어진 산장인데 우리 개념으로는 유스호스텔 같은 식입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시설은 형편없고 따뜻한 물이 나오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어떻게 여독을 풀까 고민하며 나오는데 여여산장에서는 따뜻한 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식사도 되구요.

하여 우리는 처녀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단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산장 주변은 온통 야생화 천지입니다. 매발톱과 꿩의다리, 벌깨덩굴 등이 무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신기한듯 모두들 나와서 쳐다봅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죽으로 대충 때우고 우리는 여장을 챙겨 택시에 오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는데 두장의 티켓을 줍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금강대협곡과 백두산 천지의 표를 함께 판매하는 것입니다.

어떻든 우편엽서로 활용하도록 되어진 티켓을 담고 이제 드디어 백두산의 등정입니다. 가는 길들은 온통 자작나무 수해입니다. 하얀 두팔 벌려 하늘로 하늘로 끝없이 솟아가며 신비한 원시림을 간직한 태고의 평원을 한시간 넘게 달려 우리는 백두산 아래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도로를 막아 더 이상 차가 갈수 없게 됩니다. 멀리서 볼때는 돌무더기가 흘러내린듯한 모습이었는데 가까이 와 보니 모두들 눈입니다. 엄청난 눈들은 이제야 녹아 흘러내려 아름다운 내와 폭포를 이룹니다.

만병초군락과 만주벌판(2005 이규현)

그런데 그 녹지 않은 눈밭 아래서 노오란 만병초들이 무리를 지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네요. 신선의 세계가 바로 이런 곳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 아래로는 만주벌판이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고 바로 지척에는 겨울인듯 하얀 눈들이 빙벽을 이루고 있고 우리가 서 있는 이 현장엔 꽃들이 피어 있으니 우리는 봄, 여름, 겨울을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이죠.

사계중에 삼계를 한번에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겠죠.

우리는 만병초 군락을 보며 가슴 속에 품어 있는 갈증과 답답함들을 다 씻겨냅니다. 자작나무와 어우러진 만병초들은 멀리 백두산 영봉들을 향해 너희에게 우리도 곧 다가가겠노라고 손짓합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듯 땅바닥에 깔려 엎드린 자세로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만병초는 말 그대로 암 등을 고치는 신비의 약재로 쓰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