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컬럼

다시 대접받을 농민세상은 없는 걸까?

수병재 2007. 6. 26. 13:19
 

한 여름 불볕더위를 이기고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벼들의 함성을 그들은 알까?(2005 이규현)


부지깽이도 한 몫 한다는 모내기철이 어느새 지나고 있다. 이 땅의 생명줄인 식량을 다시 생산해내기 위해 자운영꽃밭들도 그 고운 자태를 흙속에 던진지 오래다. 한때 들판을 붉게 물들이며 볼만한 풍광을 선사하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 역할과 영광은 이제 사라지고 결국은 풍요로운 생산을 위한 희생양으로 아낌없이 한 몸 내던지는 자운영의 일생은 어찌 보면 우리 농민들의 일생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사실 농민들은 5천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오는 동안 생명과 역사의 버팀목이었다. 농민들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어찌 지금의 영광이 존재할 것인가? 오죽하면 문화를 뜻하는 영어단어인 컬쳐(culture)의 어원도 경작하다(cultivate)에서 나온 것이라 하지 않는가. 결국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의 근저에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식량생산의 주역인 농민들의 피와 땀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때는 농자천하지대본으로 외견상으로라도 대접을 받았지만 정작 녹색혁명의 주역으로 조국근대화를 위한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의 공급기지로 희생을 강요당하더니 끝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냉정한 국제사회의 희생양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니 화려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핍박과 희생만을 강요당해 온 농민의 안타까운 현실은 노인네들만 가득한 농촌의 풍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실 농민들은 농부가에도 나와 있듯이 “높은 데는 낮춰주고 낮은 데는 높여주어” 골고루 평평한 땅을 일궈 한 다랑이의 논에 심어지는 모든 모가 거름과 물과 성장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평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평등심이 기본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여 분수에 맞지않는 쓸데없는 욕심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니 이런 농민의 의식과 노동이야말로 진정 역사를 이끌어 온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주인이라는 위대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현실을 암담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나이 50이 넘어도 젊은 층에 속하게 되고 젊은이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보니 이제는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게 되는 우리네 현실에서 결국은 농업, 농촌의 기능이 지금처럼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만이 뇌리에 가득하다. 이전에는 이농할 농민들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떠날 농민들은 거의 없고 조만간 자연사하면 누가 우리 농촌을 지킬 것인지 암담한 실정이지 않는가!

사실 텃밭이라도 조금 가꿔 본 사람이라면 한 해만 농사를 짓지 않게 되면 어느 새 잡초 가득한 풀밭이 되어 잡초와의 전쟁을 치러야 됨은 물론이고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한 땅으로 되돌리는 데는 엄청난 수고가 들어가야 함을 절감하게 된다. 농업은 하나의 경제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황폐화되면 되살리기 어려울뿐더러 생태환경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단순히 농업이라는 비교우위적 시각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농촌을 버리지 못할 이유는 농촌이 갖는 문화적 원천과 환경오염 등을 해소해나가는 어머니의 땅으로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농촌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 우선 인구를 주요한 기준으로 지원되고 있는 재정보조의 방식이 전면 바뀌어야 한다. 농업은 사라지더라도 농촌은 남아야 하는 것이라면 농업이 갖은 공익적 기능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도권의 인구집중 현상을 분산시켜 전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미FTA 후속조치로 농촌에 지원을 해준다고 하는 그 어떤 정책보다도 근본적인 지방교부세나 양여금의 지원시스템을 바꿔 이제는 전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균형있는 정책으로 바뀌길 고대한다.

한 여름 불볕더위는 식을 줄을 모르는데 국민의 고충은 아랑곳없이 대권에만 눈이 멀어 폭로만을 일삼고 있는 현실정치의 상황은 용광로처럼 뜨겁기만 하다. 그 속에 우리의 소박한 바람은 용광로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오직 가뭄 속에 견뎌내며 더 깊이 뿌리박으려는 마른 논바닥의 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럴 때 정말 시원한 빗줄기 쏟아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