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대에서 봉황을 기다리며
소쇄원의 물소리(신동철 화백)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이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우리 지역을 찾고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담양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첫 번째가 대나무이며 두 번째가 소쇄원이라 한다. 엊그제 필자도 찾아 온 손님들을 이끌고 소쇄원을 다녀왔다. 늘 가보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옛 선인들의 깊은 통찰과 지조와 절의의 사상에 절로 고개 숙이게 된다.
소쇄원은 수많은 사림이 화를 입었던 기묘사화로 인해 당시 사림의 영수이자 개혁정치를 추구하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화순 능주로 유배를 당하고 기어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게 되는 광경을 제자인 양산보 선생이 목격하면서 스승에 대한 깊은 흠모 속에서 조영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정파간 치열한 다툼은 변함이 없다. 더욱이 현실은 소쇄 양산보 선생이 흠모했던 정암 조광조 같은 훌륭한 지도자도 없는 듯하다.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여권은 여권대로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이전투구와 이합집산이 장난이 아니다. 예비후보자로 등록된 사람만도 70명이 넘는다니 21세기 초반 우리는 넘쳐나는 인재들로 인해 시궁창이 되어버린 정치의 공해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어쩌면 소쇄원은 이 시기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정치인들이 한번쯤 찾아 소쇄(瀟灑)라는 말 그대로 소쇄원의 맑은 기운과 중심에 흐르는 십장폭포에 정치판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환골탈퇴하여 진정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를 해줄 수 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저렇듯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제강점기하 식민사관은 조선시대 당쟁을 붕당정치로 혹평하고 쓸데없는 명분만 가지고 당쟁을 벌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어떤 이는 민주적 정당구조를 일찍이 실현한 좋은 사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 평가야 어떻든 적어도 우리 선인들은 도의적 명분을 가장 중요시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정치판을 보면 도의적 명분보다는 개인적 이해관계들만이 앞서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제대로 된 통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도 크고 이렇게 해서 과연 정권재창출이 가능할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더욱이 이러한 현실은 주민들 속에 뿌리내리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져나가고 있는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에 인위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 도를 더하고 있다. 사실 지방자치는 엄격하게 주민자치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뜻있는 사람들은 지방자치에 있어 중앙당의 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을 해 왔고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금도 갖고 있다. 하지만 당리당략에 따라 기초의원까지도 정당공천이 허용되면서 대선과 총선정국을 앞둔 현 시점에서 이를 사조직화, 사당화 시키려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불과 일년여 전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통렬한 국민의 심판으로 우리 지역에서는 특정정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렇게 지지해준 지역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천권을 장악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거취에 따라 쉽게 탈당을 하는 지방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모습에서 바람직한 민주주의상을 찾아보긴 힘들다.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생활자치이자 주민자치이지 중앙정치의 전유물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 압도적 지지로 그들을 주민의 일꾼으로 일하도록 당선시켜준 지역민들을 다시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이 탈당한 후 관망하는 어정쩡한 정치적 태도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여름 혼돈의 정치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소쇄원 대봉대에서 봉황을 기다림은 난세를 평정하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여 국민의 복지안녕과 민족의 대통일을 실현해줄 시대의 지도자를 그리기 때문이다.
한 여름 뜨거운 땡볕 속에서도 대숲은 저리도 신선한 바람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봉황이 오면 깃들일 벽오동도 저렇게 푸르고 넓은 이파리 무성히 자리하고 있는데 우리 시대 봉황은 언제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