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통을 바라며
드라마 선덕여왕이 대단원의 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필자는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지만 최근에 선덕여왕을 가끔 보았었다. 우연하게도 지난번에 본 장면은 유신이 가야의 재건을 위한 잔당들과 비담의 간계에 빠져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김춘추가 그것을 타개하는 방법이 오로지 유신이 평소 가져왔던 소신인 “진심”뿐 임을 말했던 장면이다.
과연 춘추의 예견대로 유신은 목숨을 구하려 하지 않고 “진심”을 밝히기 위해 선덕여왕 앞에 나타난다. 선덕여왕은 대역죄인을 체포하라고 불호령을 내리면서도 내심으로 ‘고마워 유신’ 하면서 돌아선다.
이 장면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며칠 전 국민과의 대화를 나누겠다며 방송에 출연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바꾸기가 과연 “진심”을 담은 것이었는지 적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이용한 자신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나 하나가 좀 불편하고 욕먹고 정치적으로 손해 보더라도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이것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세종시에 대한 기존입장을 바꾼 것이 구국의 결단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고해성사아닌 고해성사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대충 넘어가고 말았다.
그뿐 아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도 “김대중 정부가 수해대책으로 43조원을 들이는 범정부 대책을 세웠고 노무현 정부도 강을 살리기 위해 10년간 87조원을 들이는 종합계획을 세웠다”며, “내가 20조를 들이겠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에 43조, 87조 들여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과거 정책의 구체적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온통 자신의 정책에 대한 합리화만을 주장하였다는 평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당시 세웠던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건교부, 농림부, 소방방재청 등 9개기관이 합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강 바닥을 파고 둑을 높이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방송의 타이틀은 ‘국민과의 대화’였지만 ‘대화’는 없고 거의 일방적 수준의 자기 주장만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짜고 치는 듯한 고스톱식의 편성에 특히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거짓말까지 함께 있어 진정 ‘대화’를 하려는 자리였는지 ‘정책합리화’만을 강변하려는 자리였는지 끝까지 시청하지 못하고 눈을 돌리게 하고야 말았다.
어떻든 이에 대해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들의 시각은 냉담하다. 국민과의 소통을 바라며 마련한 자리라 하지만 소통은 전혀 되지 않고 갈등과 분열만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대표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통령을 맹비판 했다. 이 대통령이 대선 때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것처럼 말한 데 대해 사과했지만, 여전히 수정 강행 뜻을 밝힌 데 대해 "대통령은 세종시와 관련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는 표현을 썼지만 시늉이었을 뿐 자신이 가진 고집과 편견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자리였다"고 일갈했다.
또한 '대통령과의 대화'를 두고 "자신의 거짓과 말 바꾸기를 합리화하는 말잔치였다"며 "진심은 없고 오직 자신의 주장만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참으로 답답하다. 귀를 열어 국민의 목소리를 더욱 겸허하게 듣고 눈을 낮춰 저 아래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의 간절한 삶을 제대로 봐야 하거늘 진정한 소통은 없고 강변만 있으니 겨울 추위가 더욱 살벌하게 다가온다.
동양의 고전인 논어의 위령공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자공문왈(子貢問曰)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有一言可以終身行之者乎)잇가 자왈(子曰) 기서호(其恕乎)인저 기소불욕(己所不欲)을 물시어인(勿施於人)이니라.
자공이 한 말씀으로써 종신토록 행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서(恕) 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다른 이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충분히 헤아려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핵심 단어는 용서할 서(恕)이다. 그런데 이 한자의 조합을 보면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이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 그것이 용서라는 말이다. 곧 진정한 소통이 되었을 때를 일컬음 아니겠는가?
대통령이든 자치단체의 장이든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다양한 주의 주장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를 지지하지 않는 여러 집단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공자는 계속하여 말한다.
자왈(子曰)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시위과의(是謂過矣)니라 (논어집주 위령공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진짜 허물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