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컬럼

좌우명을 되새기면서

수병재 2009. 12. 19. 11:18

 

 

 

한해를 마감하면서 첫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의 처음이라는 것은 신선함을 안겨주기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첫눈 또한 그러한 것들 중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첫눈이 오면 사랑이 이뤄질 거 같고 첫눈이 오면 뭔가 기다리던 것들이 올 거 같은 그런 느낌들은 누구나 겪어왔을 것입니다.

모처럼 겨울답게 첫눈이 내리고 세상천지는 하얀 은세계가 되었습니다. 저는 눈 내린 들녘을 바라보며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38선을 오르내리면서 또는 어려운 일들이 닥쳤을 때 좌우명으로 삼으셨던 서산대사의 시를 떠올려봅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벌판을 걸어갈 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발걸음 하나하나 어지럽히지 않음은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나의 이 발걸음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후세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니라

 

세상의 그 누구인들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치열하고 냉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한 해를 접으면서 나 자신의 수양의 깊이는 얼마인지 되새겨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게도 지나 온 세월들은 지천명의 나이를 무색하게 합니다.

사실 공자는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삼십이립),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라 하셨습니다. 이를 해석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학문의 기틀이) 확립되었고, 마흔 살에는 헷갈리지 아니하였고, 쉰 살에는 하늘의 명령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남의 말을 들으면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고, 일흔 살이 되어서는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따라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새삼 다시 공자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공자께서 하신 말씀처럼 나는 그 나이에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있는지 또 나이 60이 되면 어떤 말을 들어도 뚜렷한 나의 주관이 있어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되묻고 싶어서입니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면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 속에 깊이 침잠해 있는 제 모습은 세속의 어지러운 이전투구를 즐기고만 있습니다.

이렇듯 안타까운 제 모습을 보며 중국 후한의 유명한 학자인 최원(호는 자옥, 78~143)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無道人之短이요(무도인지단) 無說己之長이다.(무설기지장)

施人愼勿念이요(시인신물염) 受施愼勿忘이다.(수시신물망)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말라.

남에게 베푼 것은 기억하지 말 것이며 남의 베품을 받으면 잊어버리지 말라

그분께서는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자 이 글을 쇠붙이에 새겨 책상의 좌우에 놓고 매일 바라보며 반성하고 수양했다 합니다. 하여 ‘좌우명’이라는 말이 생겨난 거죠.

저도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면서 보다 자신에게 더욱 치열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냉혹하기만 하지만 그 또한 저의 부족함에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제는 길가에 나뒹구는 돌맹이 하나하나도 곱게 보고 싶습니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나’만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릴 줄 아는 넓은 눈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소복이 내리는 함박눈처럼 새해엔 그렇게 서로서로 따스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인정이 넘치는 멋진 담양을 함께 만들어가야겠습니다. 눈꽃처럼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