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역사이야기

(3) 전우치 설화에서 문화컨텐츠로

수병재 2011. 6. 18. 11:39

본관에 대한 논란은 그렇다 치고 전우치의 신통방통한 행적은 전국 여러 곳에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놓고 있으니 전우치 관련 문화행사가 생긴다면 전국에서 릴레이로 치러야 할런지 모르겠다.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전우치전’의 한 장면. 영화배우 강동원씨가 주인공 전우치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화제가 되었던 영화 전우치를 제외하곤 아직 전우치를 내세운 축제나 문화행사는 아직 치러지고 있지 않는 듯하다. 전우치의 행적을 더 추적해보면 부천문화대전에는 전우치가 부천지역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길은 부평부사를 역임했다. 이길(李佶)의 전장(田莊)이 부평에 있었는데, 1522~1566년간에 전염병이 크게 발하여 전장에 있던 이길의 종이 심하게 앓아누웠다. 이를 해서(海西) 사람 전우치(田禹治)가 고쳐 주었다는 말이 전한다.」

뿐만 아니라 전우치의 기이한 행적은 광양에도 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광양 태금면 태인도 궁기리(宮基里)에는 궁(宮)터 자리가 남아 있단다. 500년 전 전 우치가 도술을 부려 이곳에 궁궐(宮闕)을 지었단다. 어느 날 충청도 어느 고을을 지나가는데 이 고을 수령이 얼마나 탐학(貪虐)이 심했던지 그는 이곳 백성을 구하려 마음먹었단다.

전우치는 이곳 궁기마을에 와서, 도술(道術)로 궁궐을 짓고 섬진강을 한강으로 바꾸어 놓았단다. 그리고 왕명(王命)을 빌어 섬진강을 끼고 있는 남원, 곡성, 순창, 구례, 하동 등지에 명하여 조곡(租穀)을 한강으로 가져 올 것을 명하니 순식간에 양곡(糧穀) 수만 석이 모이더란다. 전 우치가 이 양곡으로 충청도 백성을 살리고자 충청도로 떠나 간 후…궁궐은 간곳이 없고 궁궐터만 남게 되었단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궁터마을로 불렀으니, 지금 광양시 태금면 태인리 궁기(宮基)부락이 바로 그 곳이란다.

지금까지의 전우치 행적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전우치는 중종때 실존했던 인물임이 분명하고, 개성과 서울을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필시 조광조의 기묘사화와 연루되어 수배를 받으며 남도 지방으로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서 신기에 가까운 무술로 의적 노릇을 하며 민중들의 지지와 인기를 받았던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관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을 때 그 죽음을 아깝게 생각한 민중들에 의해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등의 갖가지 신기한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는 신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족보에서도 지워져야 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해주고 민중들에게는 신선이 된 그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새 세상을 열어주리라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때문에 전우치는 이미 어느 집안에 소속된 개인이 아니라 민중 전체의 희망이요 미완의 꿈에 대한 상징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원조 싸움이 아니라 조선 중기 어지러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우치라는 기인과 그 시대의 민중의 희망이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이 이 시대에 갖는 의미는 또한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함께, 우리 구비전승의 존재가치와 활용가치를 아울러 점검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더구나 선비와 민중이 한데 뭉쳐 임진의병과 항일운동의 본산을 이룬 의(義)의 공동체로서의 전통이 있고, 이연년과 견훤 등 새 세상을 향한 열망이 시작되었던 담양에서 전우치를 중심으로 한 의미만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재미난 스토리를 지닌 전우치 설화의 활용방안에 대해 노시훈 박사(전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는 담양의 금성산성을 중심으로 교육 테마파크를 조성하자고 제안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의 산성과 관련된, 교육적 기능을 가진 박물관이 없기 때문에 금성산성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교육 테마파크는 역사문화교육에 있어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다. 관련 유물·유적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한국 산성의 축성방법·기능·역사 등을 보여주는 테마파크를 산성 주변에 조성함으로써 MBC TV 역사 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 장소로 사용되어 주목받기 시작한 이곳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가족 단위 관광객의 인기 있는 체험학습장으로 만들 수 있다.」
‘선덕여왕’촬영지인 금성산성.

이연년, 전우치와 관련된 스토리는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문화 체험학습장의 스토리텔링에 이를 활용함으로써 관객들의 관심과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황금금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북면 황금리에서는 농촌체험마을의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민들이 노력하고 있다.
똑같은 가을벌판이라도 황금리의 노란 벌판은 전우치 금괴(이야기)가 묻혀 있어 그 느낌이 다르다. 웃어른들에게는 전우치 설화 하나로 힘겨운 농사도 거뜬히 해치울 수 있던 순박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달라졌지만 이야기는 남아 농사를 모르는 젊은이나 외지인들에게도 전우치와 함께 하는 담양의 가을 여행을 훨씬 설레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요 문화콘텐츠의 목적이다.

그러나 전우치가 담양에서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의 발굴과 담양 전우치 설화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화산업이란 하루아침에 졸속으로 성과를 볼 수도, 보려 해서도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전우치 이야기와 그리기 대회, 전우치 연극, 기인열전 등 작은 동네축제를 벌이고, 뜻있는 문화단체들과 연대하여 연극, 만화, 노래, 캐릭터 발굴 등 계속해서 집단창작과 의미 확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내에서 충분한 공감대와 신명이 어우러진다면 담양에서의 전우치의 도술은 분명 신기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