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이야기

병풍산행

수병재 2012. 3. 31. 11:45

어제 비가 내려 꽃샘추위 다시 오나 했더니 화창하고 좋은 날씨다. 오늘은 주말. 모처럼 병풍산행을 해보고 싶다. 뒷산 산책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고 지난 번 무등산행길에 느낀 거지만 산행을 중단하다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통사동(통싯골) 계곡에 주차해 놓고 산행을 시작한다.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물이 많이 흐르고 물소리가 좋다. 새들도 반긴다. 등산로 주변에 꽃들이 피었나 유심히 살피는데 생강나무가 활짝 피어 있다. 집에 피어 있는 생강나무는 즈금 더 노란 빛이 강한데 산에서 피는 건 연두색 빛깔이 더 강하다. 야생하는 것들의 느낌은 이런 것일까? 훨씬 더 선명하고 깔끔해보인다.

길마가지도 아름다운 향기로 반긴다. 보잘 것 없는 작은 꽃이지만 진한 향기로 반겨주니 고맙기만 하다. 저 꽃도 향수를 만들어 팔면 대단할 터인데 생물산업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일건데 우리의 현실은 아직 멀기만 하다. 사실 일전에 야생화 공부를 시작한 동기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우리 지역의 특산식물들, 자생식물들을 알아보고 거기서 산업화가 가능한 품종들은 뭘까? 그런 고민들을 해보고자 함이었다.

그러던 차에 전라남도에서 생물산업을 육성한다 하여 많은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 우리의 현실을 다시 실감하는 순간이다.

어떻든 벅차다. 오르는 길 종아리가 땡긴다. 이전 한창 산행을 다닐 때의 절반 정도 체력이나 되려나. 그것도 다행히 최근 두달 가까이 매일 아침 산책이라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겨우 30분을 올랐는데도 숨이 차고 다리가 팍팍하다. 조금만 더 가면 용구샘인데 거기가서 사진도 찍고 쉬어 볼 생각으로 계속 발걸음을 재촉한다.

뒤돌아보니 많이 올라 왔다. 지금은 나목들이지만 조만간 숲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울게다. 빠르게 변화하는 숲 속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다시 용구샘을 향하여 오른다.

 이제 저 너덜강길을 지나 조금만 더 오르면 용구샘 가는 길이 나온다. 어릴 적 전설의 고향, 용구샘! 사실 병풍산이라는 지명은 그리 오래된 지명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엔 용구산으로 불렸던 거 같다. 대동여지도나 다른 지도를 보더라도 병풍산이라는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면앙정 송순 선생이 지은 면앙정 30영에도 추월취벽, 용구만운, 몽선창송, 불대낙조가 나오는데 그런 걸로 보아 용구산이 맞는 것일 게다. 어떻든 현재는 용구산이라는 지명은 용구샘에만 남아 있다.

사실 어릴 적 나무하러 이 산에 많이 왔었는데 병풍산 뒷 기슭에 있는 용흥사를 우리들은 용사라 불렀고 거기까지 나무하러 다녀 온 친구도 있었다. 용흥사는 영조대왕의 친모인 숙빈 최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원래 몽선사였다가 용흥사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에 비유되었던 것인데 숙빈 최씨가 영조대왕을 낳았으니 용이 일어났다 하여 용흥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여러 전설을 안고 있는 병풍산은 인근의 산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최고봉은 깃대봉으로 해발 822미터이다.

 용구샘에서 바라 본 무등산 풍경과 영산강, 그리고 평야...... 일망무제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병풍산 정상에 올라서면 맑은 날 멀리 지리산 노고단이 보이고 나주 금성산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황사와 더불어 환경오염으로 인한 연무가 끊이질 않아 겨울녘을 제외하고는 깨끗한 하늘보기가 힘들어졌다.

용구샘을 빠져나와 투구봉으로 오른다. 깃대봉까지 다녀오기엔 관절에 무리가 갈듯하고 점심약속도 있었던 터라 그냥 더 짧은 길로 접어들었다. 투구봉쪽에서 깃대봉을 바라본다. 병풍산이라 이름한 것이 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때문이리라.

 

 투구봉에서 뒤돌아보니 멀리 백암산, 내장산, 회문산 등이 보인다. 아름다운 호남정맥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음같아서는 호남정맥을 모두 답사하고 싶은데 욕심뿐이겠지. 어떻든 시도는 해보고 싶다. 백두대간 종주는 아니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우리 고장 호남정맥의 면면을 샅샅히 살피고 싶다.

투구봉 정상에서 바라보니 삼인산으로 가는 능선을 따라 임도가 보이고 멀리 무등이 보인다.

어릴 적 아버님을 따라 병풍산에 왔을 때 대치장군의 설화를 들으며 힘겨운줄 모르고 올라왔었는데 지금은 대치장군이 칼로 바위를 내리쳐 두동강 냈다는 그 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구비문학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무심코 넘겨버린 많은 이야기들 속에 새삼 아버님의 이야기가 그립기만 하다. 그저 저 바위도 그 어떤 장군인가가 검을 휘둘러 쪼개낸 것이 아닐까 생각할 뿐...............

투구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희한한 소나무를 만났다. 이쪽에서 보면 이렇게 두 가지가 자라다 서로 하나된 게 분명한데 반대쪽에서 보면 한가지다. 연리지라고 하는 건 서로 다른 나무가 하나 되는 걸 말하는건데 한 나무에서 두개의 가지가 하나되어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정말 특이하다.

어떻든 오랜만의 병풍산행은 새로운 모습을 내게 보여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사순이 끝나는 즈음 고행의 순례길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