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신록의 바다에서 다도해를 마주하다

수병재 2012. 6. 13. 21:33

가뭄으로 온 들녘이 타들어가고 있는 때 비 소식이 들리니 너무도 좋다. 비록 산행일정이 잡혀 있더라도 비가 온다니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고 싶을 정돌 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크다. 그러나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는 오지 않고 흐린 날씨다.

어떻든 예정된 일정인지라 차에 탑승한다. 반가운 얼굴들 보며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완도로 향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완도의 주산인 오봉산 상황봉!

한번도 완도에 있는 산들은 정복해 보지 못했으니 오늘 가는 기쁨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더욱이 인터넷 등을 통해 알아보니 훌륭한 산행코스로 이름나 있다. 완도가 친정인 동네 형수께서도 상황봉은 완도 사람들이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성스러운 산이라 한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 중 상황봉을 제대로 등산해 본 사람이 없다. 처음부터 등산로 입구를 찾아 헤매다 결국 우리는 드라마 해신 등의 촬영 셋트장이 있는 저수지 입구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여러 개의 봉우리들을 조망하며 대략적인 산행코스를 그려본 후 출발하는데 시작부터 상당한 경사가 우리를 맞이한다. 산행을 마치고 난 후에는 어판장에 들러 횟감도 장만해야 하고 시간이 넉넉하지만은 않다. 하여 내가 앞으로 나선다. 길을 재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가는 길에 마삭줄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꽃이 조금 다르다. 이렇게 이파리도 작을 뿐만 아니라 꽃도 작으면서 그 형태가 다르다. 마삭줄이나 백화등의 경우 바람개비처럼 생겼는데 이건 그러지 아니한 것이다. 

 어떻든 상황봉을 행해 가는 길은 온통 아열대 식물들로 숲길을 이루고 있다. 능선마루에 접어드니 낙엽이 쌓인 멋진 숲길이 펼쳐진다. 햇빛이 따갑게 비추더라고 걱정할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숲길에는 아열대 기후라는 것을 보여주듯 후박나무, 참식나무, 가시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이 우릴 반긴다.

 드디어 능선 자락에 올라서니 멀리 해남의 달마산, 두륜산이 조망된다. 날이 좋다면 멋드러진 풍광일 터인데 아쉬움이 그득하다. 이렇게 산 위에서 아름다운 다도해 풍광을 보며 산행을 할 수 있다면 신선이 부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첫 봉우리에 접어든다. 저 봉우리가 바로 숙승봉이다.

 봉우리에는 원추리가 다소곳이 피어 있다.

 숙승봉을 지나 한참을 걸어오니 엄진봉이다. 엄진봉에서 다시 숙승봉을 되돌아보니 시루마냥 서 있는 봉우리가 멋지다. 저 아래로 우리를 태우고 온 관광버스도 보인다. 저기 보이는 저수지가 우리가 출발한 지점이다. 그 우측에는 해신 촬영셋트장이 보인다.

 이렇게 엄진봉을 지나 백운봉에 이르니 아름다운 숲들은 푸르른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드넓게 펼쳐 있어 우릴 반긴다. 생각 같아서는 훌쩍 뛰어 날아 저 초록의 융단위로 몸을 던지면 내 한 몸 거침없이 받아줄 것만 같다. 무등산 중봉에서 바라 본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만큼 산이 넓다는 이야기겠지.

그러나 정작 백운봉에 오르니 우리가 찾던 상황봉은 전혀 다른 위치에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여기서 돌아가기엔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가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차라리 완도수목원으로 내려가자. 그래서 우리 차량을 그쪽으로 오게 하자.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한 다음 상황봉 쪽을 향한다. 가는 길에 이정표를 보니 산행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판단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황봉을 향해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가는 도중 도마뱀을 만난다. 오랜만에 보는 도마뱀은 완도 숲의 생태적 가치를 다시 느끼게 한다. 어릴적 추억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는데 도망갈 생각을 안하니 이쁘다.

 가는 길에 상황봉에서 하산하는 등산객들에게 물어보니 30분 정도면 상황봉을 갈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을 보니 조금은 오버가 되겠지만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행 목적지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언제 다시 우리가 완도 산행을 쉽게 해 보겠는가!

이렇게 재촉하는 걸음으로 부지런히 산을 오르니 드디어 상황봉이다. 상황봉에는 이렇게 봉화대도 있다. 제주도에서부터 봉화불을 피우거나 봉수를 올리면 그걸 받아 한양까지 전달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새삼 느낀다.

 이젠 부지런히 하산해야 한다. 저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식구들 생각하면 쉬고 있을 틈이 없다. 그러나 가는 길목 중간중간에 이렇게 기암괴석들이 우릴 반긴다. 또한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에게 손짓하며 여유를 요구한다.

 

그렇게 다녀 온 상황봉!

다시 가고픈 산이다.

완도에서는 이 산을 오봉산이라고 부른다 한다. 숙승봉, 엄진봉, 백운봉, 상황봉, 심봉! 이렇게 다섯개의 봉우리를 갖고 있어 오봉산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5봉 중 4봉을 정복했다. 심봉까지 가보자는 일행이 있었지만 그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저 아래서 우릴 기다리는 차량이 많이 이동해야 하고 그러면 시간의 문제가 걸린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대야 저수지 쪽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하산하였지만 내려 와 보니 장좌저수지 쪽이다.

약간 늦었지만 당초 예정된 4시간 코스가 아니라 무려 5시간 30분. 그것도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던 것이니 실제 산행코스 시간으로는 대략 6시간 가까운 거리로 추정된다.

어떻든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모처럼 좋은 코스의 산행을 하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