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5구간, 6구간 순례기
동강마을에서 복날이라 보신탕이나 옻닭을 시키려고 하니 보신탕은 없고 옻닭은 한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단다. 하는 수 없이 빨리 나오는 오리로스를 시켰는데 젊은 친구들이 두 마리나 시켰다. 한참을 먹어도 남는다. 저녁 먹으면서 궈먹을 요량으로 남은 음식을 싸 달라하여 포장하였다.
이제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다시 우리는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젊은 친구 중 한 분은 경호관련 사업을 하는데 운동을 아주 잘 하게 생겼다. 그러나 신발이 너무 딱 맞아 발뒤꿈치가 다 벗겨져 무척 고생을 하고 있었다. 두 젊은이들은 서로 친구 사이는 아닌데 인연이란게 묘해서 부인들끼리 절친이다 보니 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제주 올레길을 갈까 하다가 지리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소감을 말한다.
하긴 우리 일행들도 지리산 둘레길을 그냥 대충 둘러보고 가는 편한 길로 생각하였으니 다들 비슷비슷한 느낌인가 보다.
어떻든 그런저런 소리에 웃으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다. 가다보니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조선시대 지리산을 유람했던 코스라는 곳이 나온다. 옛 선인들도 산을 좋아하여 ‘유두류록’, ‘유서석록’ 등 산행기를 많이 쓰기도 하고 또한 호연지기를 키워내며 산이 묵묵히 말하는 덕을 배웠던 거 같다.
일행이 된 젊은 친구가 왜 ‘인자는 요산이고 지자는 요수인가?’를 묻길래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물은 화가 나면 파도를 일으키기도 하여 제 성질을 한껏 드러내는데 산은 저렇게 움직이지 않고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가! 누가 생채기를 내어도 금새 다시 복구를 하고 언제나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덕이 많은 인자에 비유했을 것이다.’ 맞는 말일지 어떨지 모르지만 내 느낌을 표현해 보았는데 동의하는 거 같다.
길을 걷다 보니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아로 새긴 함양,산청 민간인 학살 희생자 추모공원이 나온다. 아직도 현대사의 비극은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우리 가슴과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수철까지는 상당한 거리고 가는 도중에 민박할 곳이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곳 방곡마을에서 오늘 휴식을 취해야 한다. 아주머니가 추천한 형제민박을 향해 전진! 그러나 이럴수가.....세상에 완전 조립식 건물로 꼭 군대막사같은 방이다. 화장실도 별도로 떨어져 있고 세면장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저녁 밥상에 나오는 된장국 맛은 일품이다. 우리는 돼지고기 찌개에 좋은데이를 마시며(-실은 참이슬이 더 좋은데 선택의 여지가없다 ㅠㅠ-) 피로를 푼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적이 걱정도 되지만 이왕 나선 길을 어쩔 것인가! 밤새 바람은 몰아치는데 새벽에 화장실 가는 길이 몹시도 험하다. 비바람 맞으며 다녀오는데 흠뻑 젖는다. 이래저래 걱정에 제대로 잠을 못이루고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우린 다시 출발을 한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불어난 강물이 불안함을 더하게 한다. 다리를 건너 이윽고 산길로 접어든다. 계곡물이 정말 많이 흘러 물소리에 서로의 대화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등산로도 온통 물로 가득하다. 신발은 이미 젖었고 비옷은 땀복이 되어 더 많은 땀을 흘리게 만든다. 이럴줄 알았으면 민박집에서 얼음물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내놓았을 때 가져올 걸, 후회막심하기만 하다.
어떻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올라가니 폭포가 보인다. 수십미터 절벽을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난이 아니다. 더욱이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수량도 많아 최고의 경치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곳이 바로 상사폭포다. 어느 양반집 처녀와 머슴집 총각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이 폭포에 녹아 있다. 이번 둘레길 걸으며 우리가 얻어 낸 아름다운 풍경으로 두 손가락 안에 꼽힐 곳이다.
상사폭포를 지나 계속 오른다. 쌍재는 언제나 나올 것인지? 가도가도 오르막 길일 뿐이다. 가는 길 좌우에는 마을주민들이 경작하는 약초재배지로 천궁, 옻, 산양삼 등을 식재한 거 같다. 하긴 산청은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고향이라고 억지(?)선전을 하며 동의보감촌이라는 마을도 만들고 세계전통의약엑스포도 준비하고 있어서 이렇게 약초재배를 많이 권장하는 거 같다.
어떤 학자는 허준이 산청 출생이 아니라 담양이라고 주장하는데도 우리 담양에서는 허준을 활용한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허위허위 오르막길을 오르니 드디어 쌍재가 나온다. 비닐하우스에 간이 주막을 만들어 놓고 막걸리를 파는 곳도 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때문인지 문이 닫혀 있어 아쉬운 마음만 내려놓고 가야 한다.
쌍재를 지나 이제 고동재를 향한다. 아름다운 숲길이긴 하지만 며칠을 걷다보니 지겨움도 들려 한다. 그래도 정말 아름답고 좋은 숲길이다. 다만 이 좋은 숲길 구간만을 걷기엔 접근성이 취약한 점이 아쉽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발달된 곳도 아닌 오지여서 일박을 하며 넘어야 할 곳이라는 판단이다.
고동재를 내려오니 이젠 임도다. 저 아래 산청읍이 보이고 마을도 보인다. 젊은 친구들은 발이 불편하여 우리에게 먼저 내려가라 한다. 지리한 임도를 그렇게 걸으며 내려오니 드디어 수철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생명평화 결사의 한 분이 세 바퀴를 돌 요량으로 순례를 하고 있다며 우릴 반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에게 악보를 주시는데 작곡을 하신 분이다. 어떻든 우린 마을회관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고 있노라니 젊은 친구들이 내려오는데 한 친구가 배낭을 두 개나 짊어지고 온다. 기어이 발뒤꿈치가 터졌나 보다. 일단 택시를 불러 일정을 마감하고 올라간단다. 서로 명함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담양 쪽에 오면 꼭 연락해주길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참 좋은 인연이었기에 3박4일 동안 함께 걸으며 연을 쌓아 온 거 같다. 다음에 혹여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경호강을 향해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한다. 오면서 봤던 어탕국수를 점심으로 먹어볼 수 있길 기대하며 걸어가는데 도로에서 공사하시는 분들이 강변가든을 추천한다.
점심을 먹고 6구간인 어천을 향해 걷는다. 그런데 래프팅하는 일행들이 보인다. 같이 간 형님이 우리도 래프팅 한번 해보자 하신다. 한번도 안 해본 것인데 호기심 발동!
근데 래프팅을 위해선 핸폰이며 지갑 다 내놓으라 한다. 물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사진을 찍는 건 포기! 그렇게 우린 보트를 매고 함께 경호강으로 간다. 간단한 운동과 함께 래프팅 요령에 대해 숙지하고 드디어 래프팅 시작!
빠른 물살은 우리를 신명나게 해 준다. 걸으면서 봤던 물살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어떻든 급류를 타고 흘러가며 때론 노를 젓고 때론 물에도 빠지며 래프팅을 즐긴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비싼 막걸리(?) 한 병을 마신다. 물경 만원이란다. 그래도 기분이라고 외상으로 한병 마시고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한다.
우린 그렇게 물 위를 무려 7키로미터 가까이 거닐었다.
그러나 우리의 종점이었던 어천 마을엔 먹을 만한 곳이 없다. 이젠 일정을 마무리할 때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생초에 있는 어탕집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칼국수로 어탕을 끓여주는데 비린내도 나지 않고 정말 맛이 일품이다.
그렇게 어탕으로 지리산 둘레길 1차 순례를 마무리했다. 젊은 친구들은 서울에 잘 도착했노라고 카톡으로 연락이 온다. 다행한 일이다. 서로의 건강과 안일을 기원하며 함께 했던 지나온 여정들을 되돌아 본다. 참으로 고맙고 반갑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