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오랜만에 다시 찾은 중국 2) 문자박물관을 관람하다

수병재 2012. 8. 16. 11:08

이번 여행에 함께 한 분들은 남도서예문인화대전에서 수상을 한 사람들과 서예가 선생님들이다. 특히 현대서예계의 대가이신 목인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함께 하셨다. 많은 서예인들이 중국과 교류전도 갖고 많이 방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문자박물관은 조성된지 오래지 않아 우리 서예계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문자박물관이 있는 안양시는 중국 8대 고도의 하나로 하, 은, 주 시대 수도였다고 한다. 더불어 이곳에서 그 유명한 갑골문이 엄청나게 출토되었으니 가히 문자의 발상지라고도 할만한 곳이다. 글씨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번쯤 와봐야 할 곳으로 우리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문자박물관 전경

 @여기에도 강택민 주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문자박물관에 들어가면 현관 로비에 4방향으로 4층 높이의 규모로 문자조형물이 설치되어 위용을 자랑한다

 

그러나 일찍 호텔을 나선 우리는 박물관 직원들이 9시부터 개장하는 관계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야 했다.

이곳 또한 보안검열이 상당했다. 하긴 국보급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니 도난의 우려도 있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물관은 4층이었는데 매우 큰 규모였다. 1층 입구 로비에는 동서남북으로 문자조형물이 설치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갑골이 발견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문자의 발달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한자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하루쯤 차분히 봐도 다 못 볼 정도로 대단한 규모다.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갑골

 

 

 @갑골문에서 비롯된 한자의 발전과정을 설명해 놓고 있다.

 

 

 

 

 

 

사실 갑골이 발견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고 한다. 발견되게 된 동기도 매우 특이하다. 지금부터 103년 전, 청나라 광서25년(1899년) 북경의 왕의영이란 관리가 학질에 걸렸다. 그는 오래된 거북 뼈조각이 학질에 좋다는 『본초강목』의 처방에 따라 사방으로 수소문 하던 중 달인당이라는 한의원에서 뼈조각을 구하였다. 그 때 그의 집에는 한의사이자 고문자에 이해가 깊었던 유악이라는 사람이 식객으로 있었는데 그가 뼈조각을 살펴보던 중 글씨가 새겨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갑골문의 발견은 이와 같이 우연히 이루어 졌다. 유악은 수집과 연구에 몰두하여 1903년 『철운장귀鐵雲藏龜』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갑골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갑골이 발견된 지역은 하남성 안양시 소둔촌이라는 곳으로 이곳은 은허시대 도읍지였다고 한다. 상대의 중국문명이 꽃피던 곳으로 이곳에서 출토된 갑골은 몇 개의 시대로 구분될 정도로 층층이 다른 갑골들이 발견되었다.

동작빈董作賓(1895∼1963)이라는 학자는 갑골문 발견 지역에서 발굴을 진두지휘했으며 3만 조각 이상의 갑골조각을 발굴하였다. 또한 갑골문연구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단대(斷代 : 각 왕조별 시기 구분)개념을 창시하였다. 특히 그는 갑골문을 직접 베끼면서 연구한 서예의 경지도 높은 편이다. 그가 발표한 『갑골문단대연구예甲骨文斷代硏究例』라는 논문에서는 갑골문의 시대를 다섯 시기로 구분하였다. 즉 은의 도읍지가 옮겨진 후 주왕紂王이 주나라에 망할 때 까지 273년간 8代 12왕 시대의 갑골문을 5기로 분류하였다.

그런데 갑골문이란 무엇일까. 갑甲은 거북뼈를 말하고 골骨은 짐승뼈를 말한다. 갑골문甲骨文은 거북의 뼈나 짐승의 뼈위에 새긴 글자라는 뜻이다. 갑골의 뒤쪽을 불에 달군 가는 쑥대로 눌러 급속히 팽창시키면 국부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의 상태로 점을 친 뒤에 그 주변에 점을 친 사람의 이름, 점친 내용 및 그 결과 등을 새겨넣은 글을 말한다. 초기에는 은나라의 옛땅에서 갑골이 나왔기 때문에 은허문자隱墟文字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점을 친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복사卜辭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런데 이 갑골문을 새긴 민족은 어떤 민족이었을까? 동행한 목인선생님은 한족이 새긴 갑골문과 안양지역에서 발견된 갑골문이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한족들이 새긴 갑골은 끝이 둥글게 각이 되어 있는 반면 안양지역 갑골은 첨두첨미, 곧 처음과 끝이 날카롭게 시작되고 끝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다. 이 갑골은 날카로운 금속으로 새긴 것으로 철기를 사용한 민족이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 민족이 바로 동이족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하신다. 이 동이족이 한때 중원을 장악하고 나라를 세웠다가 나중에 한족에 밀려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 일부가 태국의 치앙마이로 흘러갔고 일부는 한반도, 또 다른 일부는 만주와 몽골 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지금도 치앙마이의 민속들을 보면 우리와 유사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것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한다.

어떻든 현재 서예의 취향을 보더라도 중국의 경우 전서를 쓸 때 끝이 둥근 형태를 선호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끝이 날카로운 금문을 더 잘 쓴다는 점에서도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인자는 그렇게 전달되어 내려와 기억할 수 없는 과거를 유추하게 만드니 묘하기만 하다.

이는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문자라 일컫는 가림토 문자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곧 직선이며 끝이 뾰족한 게 특징으로 첨두첨미한 갑골문자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가림토 문자는 고려시대에도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이 한글창제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인 설이라 하니 우리 조상들의 문명과 문화에 새삼 다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고대사회의 비밀을 푸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문자의 원형을 찾아보며 비교연구하는 노력들은 서예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수불가결한 일임을 절감하며 학문에는 끝이 없음을 느낀다.

 

 @2층에 전시되어 있는 한자 형성에 대한 여러 유형들 분류

 @2층에 전시되어 있는 청동제에 새겨진 명문

@인니에 새긴 인장

 @죽간에 쓴 글씨

 @3층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작가들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