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희망 가득 주는 고니들과의 만남
설을 보내고 정신없이 며칠이 지났다. 계속 미뤄왔던 조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삼촌으로서의 신용도에 문제가 생길 거 같다. 이젠 시간 내어 달려가는 길 외엔 방법이 없다. 마침 옆지기도 휴가를 낸단다. 더욱 좋은 일이다. 우린 갑작스레 일정을 잡고 함께 부산으로 출발한다.
가는 도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에 들렀다. 이중국적자, 정확히 따지면 외국인을 우리나라 장관으로 임명하고자 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그리운 이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비록 그분이 현재하진 않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린 눈시울을 붉히며 노랑바람개비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안타까움의 노래인지 위로의 노래인지 몰라도 바람은 늘상 멈추지 않고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여지없이 돌아가는 저 바람개비는 우리네 세상도 그렇게 그렇게 흘러 돌아 끝내는 모두가 바라는 희망의 세상이 올 거라 말해주는 거 같다.
역사는 그렇게 늘 아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와 대화하며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 물에다 자기 모습을 비쳐보지 말고 사람에게 자기 모습을 비쳐보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희망을 염원하며 땅바닥에 바짝 업디어 밑돌이 된다.
우리는 진영 재래시장에 들러 생각지도 않은 대보름 장을 보고 정말이지 모처럼 경상도 음식 중에서는 맛나게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을숙도로 향한다. 을숙도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늘 지나치기만 하고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래 전 먼 발치에서 보았단 을숙도는 온통 갈대숲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문화회관이 들어서고 각종 체육시설이 들어 선 아름다운 공원이 되어 있다. 을숙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생태공원, 남쪽은 철새공원이다. 철새공원을 진입하는데 주차관리소에서 어딜 가느냐 묻는다. 철새보러 왔다하니 얼른 주차하고 오면 철새관광을 위해 마련된 전기버스가 곧 출발할 예정이란다. 6억5천만원이나 한다는 전기버스는 한 번 충전하면 100키로미터 정도를 달린다고 한다. 장거리를 달리기엔 아직 한계가 있지만 어떻든 에코파크 답게 이런 버스를 준비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해주니 매우 좋았다. 기사아저씨가 가이드를 곁들인다. 차를 이동하면서 다양한 오리떼 종류와 가마우지 등을 설명하고 나니 어느 덧 목적지에 당도한다.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가야 한단다. 철새들을 위한 배려인 거 같다. 2~3분 정도 걸어가니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더욱 다급해져 발걸음이 빨라진다. 기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러시아 지역에서 4박5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백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한다. 백조는 고니라고도 하는데 워낙 덩치가 커서 활주로가 최소 6~70미터 이상은 있어야 된단다. 아니나다를까 처음으로 백조를 보니 정말 덩치가 대단하다. 그리고 울음소리도 매우 특이하다.
우연히 방문한 이곳에서 겨울의 진객이자 천연기념물인 백조떼를 만나다보니 가창오리떼의 군무를 보기 위해 해남까지 두번이나 갔음에도 실패했던 기억을 떠오른다. 무슨 일이든 억지로 되지 않고 다 내 맘대로만 되지 않은 게 세상의 이치인 거 같다. 마음을 비우면 도리어 더 좋은 결과들이 온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도 느끼게 된다.
어떻든 새해 벽두에 행운을 가득 안겨다 준다는 고니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조카들에게 감사하며 우리는 오랜만에 다대포를 향한다.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버려 엣 갈대밭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일부 갈대밭이 남아 있다.
저 갯뻘에 수많은 고니떼들이 한가로이 노닐며 겨울을 만끽하고 있다. 겨울의 진객 고니떼를 보게 되는 기쁨 속에 우리 마음 속에도 희망의 씨앗을 다시 심는다.
인간들의 욕구는 끝이 없는 것인지 을숙도를 가로 질러 대교를 새로 건설했다. 소음이 최소화되는 첨단 공법이라 하지만 굳이 이쪽을 관통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은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