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책을 쌓아두고 파도소리 음미하며 세월을 즐기는 채석강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에 분노하는 날이다. 수치스러운 소치의 모습에 마음 상하여 있는데 얼어붙은 마음 녹일 수 있도록 후배 딸이 기회를 준다.
방학이라 내려 와 있는데 바다구경이 하고 싶단다. 우리 집에서 가까우면서도 볼 만한 곳이 많은 변산을 택한다.
늘상 가 보는 곳이라 질릴만도 하건만 바다를 워낙 좋아하는 옆지기랑 함께 길을 나선다.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빠른 변화는 길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하여도 변산반도를 가려면 1시간 30분 가까이 걸려야 했지만 이젠 50분도 채 안걸린다. 고창 담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엄청나게 빨라졌다.
그런데 도로가 개설되면서 교통은 빨라져도 아름다운 경관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깝다. 오랜만에 가 본 변산반도도 해안가를 따라 도로 개설들이 한창이다. 작으면서도 아기자기하니 아름다웠던 모항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급속한 관광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테지만 바로 몇키로 이내에 콘도미니엄을 짓다가 부도가 나 방치되어 있는 곳을 인수하여 완성하는 게 지방공사에서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떻든 오늘은 바다구경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아이를 위한 날이므로 나름의 배려를 해 본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채석강을 찾는다. 겨울이 어느 덧 가고 봄이 밀려오고 있는 날이지만 바닷바람은 아직도 차다. 그래도 시간을 잘 맞춰 썰물인지라 맘껏 채석강을 관람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사실 채석강을 제대로 본 것은 나도 오늘이 처음이다. 늘 좌우 양편 입구 쪽만 보고 갔었는데 오늘은 구석구석을 음미하여 본다.
이곳에 오면 생각나는 민요가 있다. 영감이 할멈을 찾으며 부르는 탈춤 속에 한 장면
채석강 명월야에 이적선 따라갔나 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 따라갔나.......
바로 이곳이 이태백이 노닐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곳곳마다 사대의 흔적들이라 아쉬움도 크다. 화순에 가면 적벽이 있고 우리 동네만 하더라도 공자를 추앙하여 마을 지명들이 만들어졌으니 중국대륙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첩첩단애........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 하다. 저렇게 많은 책들을 쌓아두고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내 게으름과 무지를 탓하기도 전에 어느 덧 노안으로 접어들었으니 부끄럽기만 하다.
자연의 세월은 이렇게 아름다운 문양들을 곳곳에 만들어 놓고 우릴 반긴다.
누구의 작품일까
마치 두꺼비가 물에서 막 튀어 나오려는 모습같다.
물과 세월의 합작품......
그랜드캐니언을 연상하게 하는 멋진 풍광으로 우릴 반겨주는 해식동굴
저 동굴 안에 좌선하며 하루쯤 말없이 묵상하고픈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