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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을은 그렇게 흘러간다

수병재 2012. 11. 11. 22:48

늦가을 정취가 무르익어 가는 주말이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다행히 맑은 날씨다. 산행하기엔 매우 적절한 날씨.

오늘은 우리 지역에 있는 금성산성을 거쳐 강천사로 내려가는 산행이기에 조금은 여유있게 출발한다.

이제 가을걷이가 끝나서인지 참여하는 회원이 오늘은 유난히 많다. 버스 한 대를 꽉 채우는 숫자다.

우리는 담양온천 옆 주차장에 도착하여 임도를 따라 금성산성 남문을 향한다. 오랜만에 가 보는 길이다. 가는 길에 수목들이 많이 쓰러져 있다.  태풍의 위력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보국문 또한 태풍으로 인해 많이 흔들려 심각한 손상을 입은듯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켜 놓았다. 기둥들을 X자 형태로 묶어 놓아 보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충용문 광장에는 산성 별장들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가 여전히 서 있다. 그 중 어떤 것은 글자를 심하게 훼손하여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비는 두 동강이 나 있기도 하다. 선정을 베풀어 그 은덕을 잊지 못하겠노라는 호칭을 받고 싶어 비석을 세웠지만 탐학한 횡포는 끝내 민중의 원성을 자아내 이렇게 복수의 결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예부터 '돌에다 명성을 새기려 하지 말고 네 마음 속에 새겨라'는 말이 나왔을 게다.

내남문인 충용문을 지나 내성을 거쳐 동문으로 향하는 길엔 단풍이 아직 곱게 남아 있다. 가는 길에 와편들이 널려 있다. 그 중 몇개를 집어 든다. 전각하기에 괜찮을 듯 싶어 산행길에 거추장스럽지만 그래도 챙겨든다. 내성 마루에 올라서니 나이 드신 노인께서 죽순주를 한잔 권하신다. 연세를 물으니 77세라 하신다. 대단하시다. 우리를 추월하여 가파른 언덕길을 먼저 오르시니 정말 건강하시다. 새삼 오래 전 아들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만난 어르신이 70 고희 기념으로 종주를 하신다고 말씀한게 생각난다. 우리도 저 나이에 그렇게 건강하게 산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동문에 당도하니 집에서 담궈 온 막걸리를 한잔 건네 주는 동네 형님이 정말 고맙다. 땀 흘리고 난 뒤 한잔의 막걸리는 천고의 시름을 다 잊게 만든다.

 

 

동문에서부터는 성곽을 밟고 가는 길이다. 오랜 세월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며 지켜주던 그 성곽은 지금도 여전하다.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쌓여 저 성곽을 이뤘을까? 한장한장 켭켭이 쌓여진 돌들을 보며 유구한 역사 속에 말없이 흘려왔던 민중들의 피땀이 생각난다. 오죽하면 남문 옆 골짜기 이름이 이천골일까!  성을 사수하는 사람들과 외적들의 혈투 속에 이천명이 넘는 시신이 골짝에 가득하여 이천골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향을 피워 골짜기 안에 연기가 자욱했노라는 구전을 접하면서 오늘 우리가 걷는 이 길들의 의미가 더욱 새롭다. 연동사라는 절 이름도 그래서 연꽃 연이 아닌 연기 연이지 않던가!

약간 가파른 성곽을 오르니 북바위다. 운대봉이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금성산성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라 아마도 이곳에서 군사를 지휘하며 진군의 북소리를 울렸던 곳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북바위라 불러진 것은 아닐까.

북바위에서 바라보는 강천사 계곡의 단풍이 아직도 곱다. 맑은 날이라면 지리산 노고단도 보이고 무등도 훤히 다가올텐데 가을하늘이라지만 시계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조금 내려가니 아직 단풍이 남아 있다. 맑은 햇살에 비추는 단풍이 무척이나 곱다. 단풍에 심취하여 내려 오니 비룡폭포가 나온다. 구룡폭포라고도 한다는 이 폭포는 산행길 한켠에 숨어 있다. 아쉽게도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멋진 푹포를 감상할 수는 없으나 오랜 세월 물살에 패여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비룡폭포는 정말 다시 찾아보고픈 마음을 들게 한다.

라면에 위스키 한잔하며 산행의 맛을 느낀 후 구장군폭포의 위용을 감상한다. 순창군의 관광마인드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오래 전부터 관광명소화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온 그 노력은 정말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될 정도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대단한 인파들이 만추의 서정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중종반정 이후 집권한 세력의 서슬푸른 칼날에 아무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이곳 강천사에서는 당시 순창군수 김정, 무안현감 유옥, 담양부사 박상 세 분이 모여 관인을 놓고 서로 결의하여 상소를 올렸던 삼인대가 있다. 그분들의 고귀한 절의 정신은 저렇듯 붉은 단풍으로 불타올라 시대의 표상이 되고 있다. 어려운 시기 진정한 선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보여줬던 선인들의 정신을 생각하며 내려오는 길엔 단풍이 곱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