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제주시내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풍경

수병재 2013. 2. 8. 21:35

모처럼 제주에 간 김에 최대한 시간을 활용하고자 늦은 시간의 비행기를 예매하였다. 하여 제주일정의 마지막 날은 오후 3시 정도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우린 이왕 제주에 온 김에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시간을 활용할 적절한 곳을 물색하였다. 하여 합의를 본 것이 제주 공항까지의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고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는 곳으로 김대건 신부께서 중국에서 귀국하던 중 표류한 지역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차귀해안에서부터 절부산까지 다들 가보지 못한 곳이기도 하고 성지순례를 하는 거라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가 만발이다.

그러나 오늘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일정을 포기해야 하나 보다. 어차피 인생이 우리 맘대로 되는 건 아니잖는가.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리라.

어쩔 수 없이 이른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날이 갠다. 하여 우린 제주항에서부터 공항까지 무작정 해안을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바람은 거친 파도를 부르고 하늘은 여전히 흐리기만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는다. 반주로 걸친 소주는 바닷바람의 추위를 이겨내기에 충분하다.

잠시 걷다보니 낯익은 길이다. 공항에서 제주 시내를 올 때면 반드시 거치는 곳으로 지역 주민들의 얼굴들이 도로벽면에 가득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한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한데 모아 본다는 거 자체가 재밌다. 우린 작은 마을에서도 언제 한번 저렇게 모든 구성원들이 모여서 환한 웃음 한번 지어 본 적이 있던가. 곳곳마다 마을가꾸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다양한 아이디어로 지역을 가꾸고 있는 그네들이 부럽기만 하다. 아울러 처사도 아니면서 처사인 척 은둔하는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걷다보니 멋진 바다의 풍광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심상치 않은 구름다리가 보이고 뭔가 멋진 풍광을 예감하는 정경이 들어 온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진다. 우와! 세상에 시내 한 가운데에 이런 별천지가 있다니!  

 용암이 신속히 흘러내리며 만들어 놓은 협곡이 바닷물과 만나면서 파도에 밀린 모래로 자연스레 못이 조성된 듯하다. 깎아지른 절벽이 좌우로 펼쳐져 계곡을 이루고 있다. 그랜드캐넌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멋진 곳이 시내 한 가운데에 있었다니 그 동안 공항에서 시내를 지나다니며 보지 못한 게 이해가 안갈 지경이다.

  

 

 

 요즘처럼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저렇듯 함부로 이 지역에 다리를 놓지 않고 더 넓은 면적을 잘 보전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최고로 멋드러진 지역은 여전히 남아 있어 위안을 준다.

  

 

 이곳을 제주에서는 용연 또는 취병담이라 예로부터 칭했나 보다. 용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팔각정자도 건축해 놓았고 구름다리도 가설해 놓았다. 구름다리에서 바라보는 용연의 풍경은 마치 한반도 지도를 닮은 거 같다.

 

배를 타고 저 취병담을 조망하며 노닌다면 내가 곧 신선이 되는 것이리라. 이를 반증하듯 조선시대 목사를 비롯한 지역의 선비들이 이곳의 승경을 노래하며 벼랑에 멋드러진 시문을 새겨 놓은 걸 복각하여 전시해놓고 있었다.

 선유담이라고 했었는지 가장 먼저 선유담을 각  해 놓은 바위가 보인다. 이곳에서 노니는 사람은 무조건 신선이 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경치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흥에 취하니 별유천지비인간이 바로 여기 아니겠는가! 그게 곧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취병담. 푸르른 시냇물과 바다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못을 이루니 취병담이라 했을까. 아래 글씨는  조선 말엽 제주 목사로 부임해 온 당대의 명필인 홍중진에게 제주 선비들이 부탁하여 글을 받아 새긴 것이라 한다. 역시 예서보다 행초서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게 다가온다.

 아래는 이곳의 승광을 노래한 시들이다.

백록담유수  백록담 물 흘러 내려

위연대해심  갯가에 못 이뤘으니

양애개취벽  기슭은 푸르른 절벽인데

귀객편주심  나그네는 조각배를 찾는구나

1767년에 임관주라는 분이 지은 시다. 영조 때에 제주에 온 유배인이라 한다.

 

 

 

 

이렇게 많은 시문들을 수 많은 시인묵객들이 남긴 이곳은 영주팔경 중의 하나란다. 가까이에 용두암이 있는데도 우린 용두암만 훌쩍 보고 떠났으니 여행정보의 부족함을 어이하랴?

그나마 이렇게 안좋았던 날씨로 인해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행운을 누렸으니 우리 일정을 망치게 한 하늘에 감사해야 할 뿐이다.

길에서 만난 우연한 풍경은 우리에게 때론 이렇게 멋진 행운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길래 발굼치에 채이는 돌맹이 하나에도 늘 감사하며 아름답게 보아야 할 일이다. 매일매일 일상에 감사하며 모든 것들을 보며 즐길 수 있도록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가 이렇게 그 라음다운 풍광을 보고 글을 쓸 수 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