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관동제일경이라는 죽서루에서 노닐다

수병재 2013. 6. 20. 06:58

굳이 야영을 하지 않더라도 세월의 연륜은 새벽잠이 없게 만든다. 더욱이 여행길의 첫날,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이기에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 감자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계곡 중 하나라는 불영계곡으로 향한다.

금강송 군락지로도 유명한 소광리가 지척이긴 하지만 불영사 계곡만을 보고 동해안 국도를 달려가기로 한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불영사 매표소엔 사람이 없다. 하여 저절로 무료입장이다. 공짜라 더욱 기분 좋은 아침 불영사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시원하게 우릴 반긴다.

 

 역시 일품인 불영계곡의 모습! 그런데 불영사까지 도로를 내면서 옛 유적을 훼손해 놓았다. 단하동천이라 바위에 새겨진 그 아래에도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도로공사를 하면서 일부가 묻혀져 있다. 어떻든 붉은 바위와 어우러져 골짜기에 피어나는 안개의 모습이 그림처럼 눈에 그려진다. 가히 신선의 세계에 우리가 발을 딛게 되었으니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장단맞춰 거니는 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불영사를 향해 가는 길들은 이렇게 아름드리 소나무숲이다. 금강송들이 잘 자라서 멋지게 우릴 맞이하고 있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저렇게 크면서도 우리 눈을 전혀 피로하게 하지 않지만 나는 글씨를 쓰면서 하나하나 긋는 획선들이 왜 자연스럽지 못할까....숲에 오면 늘 그런 생각들을 해 본다. 지극히 자연스러움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런 경지는 어떤 것일까?

 

 처음으로 와 본 불영사.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건축한 거라 하는데 특이하게 거북이 좌우에서 대웅보전을 짊어지고 있는 형상이다.

 

 

 불영사를 참배하고 나오는 길에 이쁜 엉덩이를 만났다.

 깊은 계곡을 다시 빠져나와 울진으로 향하는데 길가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장을 보려는지 마을 승강장마다 줄지어 서 계신다. 울진 장날임을 직감하고 우리는 울진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해안가 도시답게 수산물이 엄청나다. 한바퀴 돌다가 매우 저렴한 가자미회와 오징어회를 샀다. 저 한바구니에 이만원인데 덤으로 절반을 더 주신다. 거기에 상추까지 얹어주시니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다.

울진시장에서는 매우 특이하게 고사리를 이렇게 엮어서 판매한다. 그대로 말려 가지고 나온 것도 있다. 엮는 게 예술이다. 내려가는 길목에 만났더라면 얼마든지 사가지고 갈 건데 우리는 앞으로 3일을 더 버텨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잡는 손을 뿌리쳐야만 한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은 조금이긴 하지만 내려가야 하는지라 우린 죽서루를 향해 출발한다.

 

 영덕대게로 배를 채우고 찾아간 죽서루는 과연 관동제일루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하게 한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바다가 아닌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위풍당당! 이곳에 있으면 호연지기가 절로 생기게 되니 천하의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노닐면서 자신의 작품들이 편액으로 남겨지길 얼마나 바랬을까.

 우리 선인들의 건축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담벙주초 위에 각기 길이가 다른 기둥들을 세워 멋드러진 누각을 조성하였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이곳을 바다의 신선들이 와서 노닐던 곳이라 표현하는데 나는 입에서 말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니 차오르는 감흥을 글로 풀어 낼 재주가 없어 그저 입만 다물고 있는 것이니 어찌 우리의 천박한 지식과 미학으로 이 아름다움을 감히 표현할 수 있으랴! 그저 바라보며 느끼는 것만이 최고일뿐이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