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청간정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수병재 2013. 6. 27. 17:24

지독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도대체 정적을 잡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그것이 국익에 저해가 됐건 오로지 우리 편에 유리하기만 하면 끝이다. 개인 간에도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우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는 법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어디서 배워먹은 정치인지 한결같이 상대를 물어뜯는 불독을 닮았다.

세상에 국가안보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개입으로 초박살이 나고 있다. 누구 하나 책임은 지지 않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린 조직에 대한 자존심을 거론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없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전직 대통령의 회담까지 공개하면서 천방지축, 좌충우돌, 동반자살......에고....난리가 아니다.

안타깝기만 한 세월 속에 다행인 것은 여러 곳에서 시국선언들이 잇따르면서 그래도 옳은 소리를 내는 집단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자기 성찰 속에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런 저런 생각 속에 우리는 속세의 정치를 떠나 청간정으로 향한다. 가는 길목에 하조대가 우릴 유혹한다.

 그 옛날에도 서로 아귀다툼하는 정치가 싫어 중앙정계를 떠나왔던 하씨와 조씨가 서로 어울려 노닐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하조대! 우리도 그들의 아픔을 만끽하며 오늘 그들이 노닐던 이곳을 거닌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은 저렇게 변함이 없건만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소나무숲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삶의 경계를 생각해본다.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 것일까? 우린 결국 주관적 잣대로 객관적 오류를 범해오지는 않았던 것일까? 내가 누군가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 누군가가 틀렸다고만 하였던 것은 아닐까.....이러저러한 생각 속에 우린 어느덧 낙산사에 다다른다.

 

 길에서 길을 물으며 다다른 낙산사는 몇 년 전 화마의 흔적이 아련하기만 하다. 믿어지지 않는 산불의 위력을 재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를 느낀다. 어찌 감히 우리 따위가 함부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다만 길에서 길을 물으며 찾을 뿐이다. 그 길을 찾을 때까지..........

 다행히 의상대는 화마를 피해갔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소나무도 정정하다.

 의상대에서 홍련암 가는 길이 새삼스럽다. 이곳을 보면 엄청난 화마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

 홍련암에서는 바닷물이 보인다고 한다. 카메라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나그네의 호기심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바위틈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닷물은 홍련암 암자의 마루바닥 아래까지 들어 와 늘상 일렁이는 파도소리로 염불을 읊어주며 마음을 닦게 한다. 밀려왔다 돌아가고...돌아갔다 다시 밀려오는 저 윤회의 소리.....세상은 그렇듯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연속인 것이다.

 의상대에서 나와 해수관음보살상으로 가는 길목에 보물이 있다. 아름다운 부도인데 조선시대 작품이다. 조선시대 부도 작품치고는 매우 섬세하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부도를 보면 구례 연곡사의 부도와 화순 쌍봉사의 부도가 떠오른다. 정말 기막힌 예술작품들이다. 천년 세월을 이겨 낸 그 작품들을 현대에 그 이상으로 제작할 수 없음에 옛 선인들의 미적감각과 섬세한 손길에 새삼 경의를 표할 수밖에....

 화마로 인해 새로 지은 보타전 건물의 현판. 여초 선생의 작품이다. 장천비 스타일의 글씨를 멋지게 쓰셨다. 도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것이 역시 관음보살이 사셨다는 보타락가의 세계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 아름다운 원통보전의 담장들이 새로 복원되었다. 옛 맛은 제대로 나진 않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할 뿐...우린 낙산사를 뒤로 하고 청간정으로 향한다.

 

 두 개울이 만나 동해로 빠지는 한 가운데에 섬처럼 자리한 곳에 위치한 청간정은 정말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청간정 오르는 솔숲길이 너무도 아름답기만 하다. 원래 청간정 자리는 현 자리 위쪽에 위치한 군부대 감시초소 부근이라 한다.

 

 

 이곳 청간정에는 역대 대통령의 친필이 두개나 걸려 있다. 하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이며 다른 하나는 최규하 대통령의 작품이다.

 

 청간정에 올라 사위를 바라보니 유구무언 우리의 재주로는 찬탄사 하나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위로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갈매기만 하릴없이 날으며 우리의 마음을 달래준다.

청간정을 마지막으로 관동팔경의 감상은 이젠 끝이다. 오로지 통일의 염원을 안고 통일각에 가서 기원하는 거 외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통일전망대 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다. 출입국 신고를 하고 이렇게 철저하게 검문검색을 당하며 검색대를 통과하여야 한다. 분단의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 과정을 겪은 다음 통일전망대에 오르니 아스라히 북녘 땅이 보인다. 날이 좋다면 바로 지척인데...저 멀리 해금강과 금강의 물결이 흐느끼는 듯 하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성모님도 북녘땅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계신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다. 한 민족, 한 나라인데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분단의 아픔을 겪은지 60년이 넘은 세월! 남과 북은 그렇게 아직도 총부리를 겨누며 서 있다. 서로 서로 자국내 정치에 적절하게 활용당하면서 깊어가는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우린 발걸음을 되돌린다. 통일의 그날, 저 철조망을 걷어버리고 평화의 함성 지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면서................